에르덴주 사원 (Erdene Zu Monastery)

에르덴주 사원(Erdene Zuu Monastery)은 몽골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불교 사원으로, 1585년 할하 몽골의 통치자 압타이 사인 칸(Abtai Sain Khan)이 제3대 달라이 라마를 알현한 뒤 티베트 불교를 국교로 선포하면서 창건되었다. 사원은 몽골 제국의 옛 수도였던 카라코룸(Karakorum) 유적 위에 세워졌으며, 당시 폐허로 남아 있던 성벽과 건축물의 석재·벽돌이 재사용되었다. 건립 이후 에르덴주는 수십 개의 전각과 500여 채의 건물, 수천 명의 승려가 거주하는 대규모 종교 중심지로 발전하였고, 몽골 전역에서 불교 학문과 의식이 집중되는 대표 사찰로 자리매김했다.

사원은 불교에서 완전함과 충만을 상징하는 숫자 108에 맞춰, 높고 하얀 불탑이 줄지어 선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 성벽은 약 400m 길이의 정방형을 이루며, 각 변과 모서리에 배치된 불탑이 사원을 보호하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경내의 전각은 티베트 불교 사찰 건축 양식에 중국식 지붕 장식과 목조 세부 표현이 혼합되어 있으며, 일부는 몽골 전통 게르(유목민 천막)의 구조를 반영해 독특한 공간감을 형성한다. 그러나 17세기 말 준가르-할하 전쟁으로 전각 일부가 파괴되었고, 가장 심각한 피해는 1930년대 몽골 인민공화국 시기의 종교 탄압 과정에서 발생했다. 이 시기 전국적으로 대규모 사찰 철거와 승려 탄압이 이루어졌으며, 에르덴주 역시 폐쇄되어 대부분의 건물이 사라졌다.

사원의 성벽과 일부 전각은 파괴를 피했으며, 1940년대에는 외국인 방문객에게 종교 관용을 과시하기 위한 ‘박물관’으로 지정되었다. 당시 내부 공간은 불교 의식 대신 유물 전시와 역사 해설을 중심으로 운영되었지만, 종교적 기능은 중단된 상태였다. 1990년 몽골의 민주화와 함께 종교의 자유가 회복되면서 에르덴주는 다시 불교 사원으로 복원되었고, 경내에서는 승려들의 독경과 의식이 재개되었다. 현재 사원은 불교 수행, 대중 법회, 전통 축제 등 다양한 종교 활동이 이루어지는 신앙의 장이자, 몽골 불교사와 건축사 연구에서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카라코룸 유적지 인근이라는 지리적 배경은 에르덴주에 특별한 상징성을 부여한다. 이는 몽골 제국의 정치·문화 중심지와 티베트 불교 전통이 한곳에서 만나는 역사적 교차점을 보여주며, 오늘날에도 국내외 순례자와 여행객이 반드시 찾는 성지로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하얀 성벽과 불탑, 그리고 푸른 초원과 하늘이 어우러진 사원의 모습은 몽골 불교문화의 정수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며, 계절마다 변하는 자연 풍광 속에서 그 위용과 신성함을 잃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