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벡 마애불 (Mulbekh Buddha)
물벡 마애불(Mulbekh Buddha)은 인도 라다크 연방준주 카르길 지역, 카르길에서 레로 이어지는 고개길 도중 마을 외곽 절벽에 새겨진 대형 석조 불상이다. 제작 시기는 7~8세기경으로 추정되며, 당시 이 지역은 실크로드 북부 지선과 카슈미르, 중앙아시아, 티베트가 만나는 교차로였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조성된 물벡 마애불은 인도-간다라 불교 조각 전통과 중앙아시아 불교미술이 결합된 양식을 잘 보여준다. 오늘날에도 험준한 산세와 계곡 사이에 우뚝 서 있는 불상은 라다크 불교문화의 상징적인 유산으로 남아 있다.
불상은 약 9미터 높이로 암벽 전면에 부조 형식으로 조각되었으며, 석가모니불의 입상으로 해석된다. 오른손은 설법인(說法印)을 취하고, 왼손은 아래로 내려 옷자락을 잡은 형태를 하고 있는데, 이는 카슈미르와 간다라 불교 조각에서 보이는 전형적인 도상이다. 불상의 얼굴은 온화하고 눈은 길게 표현되었으며, 이목구비에는 중앙아시아적 특징이 드러난다. 옷자락의 흐르는 듯한 선각과 간결하면서도 힘 있는 조각 수법은 고대 불교미술의 지역적 융합을 잘 보여주는 요소이다.
불상 주변에는 작은 불탑과 암자 흔적이 남아 있으며, 과거에는 수행자들이 이곳을 거점으로 삼아 명상과 기도를 이어갔다. 현지에서는 이 불상을 ‘마이트레야불’(미륵불)로 보기도 하며, 미래불의 강림을 기다리는 신앙적 대상이 되었다. 이는 조형미 이상의 종교적 의미를 더하며, 당시 라다크 지역 불교 신앙의 다양성과 개방성을 보여준다. 불상 위쪽의 바위에는 후대에 새겨진 불교 문양과 비문이 남아 있어, 여러 시대를 거치며 신앙과 예배가 이어져 왔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물벡 마애불은 라다크 불교문화 연구에 있어 귀중한 사료일 뿐 아니라, 길을 오가는 순례자와 여행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성지다. 절벽에 새겨진 거대한 불상은 자연과 건축, 신앙이 결합된 상징적 풍경을 이루며, 험준한 산악지대 속에서도 불법이 전파되고 뿌리내렸음을 증언한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수천 년의 시간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은 불교 신앙의 흔적과, 고요한 라다크 계곡의 장엄한 분위기를 동시에 체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