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로보두르 사원 부조 (Borobodur Bas-Relief)
보로보두르 사원은 약 2,600여 개의 석조 부조(reliefs)를 품고 있으며, 그 총 연장은 약 5킬로미터에 달한다. 이 방대한 부조는 불교 교리와 신화, 일상생활의 장면까지 아우르며, 순례자가 사원의 테라스를 따라 이동하면서 불교적 세계관을 체험하도록 설계된 일종의 시각적 경전 역할을 한다. 부조는 사원의 네 벽면과 회랑에 촘촘히 새겨져 있어, 건축과 서사의 결합이라는 독창적 특징을 보여준다.
부조의 주된 주제는 석가모니의 전생담인 자타카(Jātaka), 석가모니의 생애, 대승 불교의 경전 내용, 그리고 불교 우주론을 담은 장면들이다. 이를 통해 사원을 도는 순례자는 단순한 이동자가 아니라, 불교 교리를 학습하고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수행자가 된다. 각 장면은 인물과 동물이 세밀하게 묘사되었으며, 당대 자바인의 복식, 건축, 해양 교역 활동까지 생생하게 담겨 있어 역사적 사료로서도 큰 가치가 있다.
특히 하층부에 위치한 카르마바이바가(karma-vibhaṅga) 부조는 업(業)의 인과와 윤회의 과정을 주제로 하고 있다. 인간의 탐욕, 분노, 어리석음이 초래하는 고통과, 선행이 가져오는 긍정적 결실이 대비적으로 표현되어 있어 불교적 교훈을 직접적으로 전달한다. 이 부조는 수행자가 욕망의 세계에서 벗어나야 함을 일깨우는 출발점으로 기능한다.
보로보두르의 부조는 예술적 완성도 또한 뛰어나다. 인물의 표정, 동작, 배경 묘사에 세밀한 사실성이 부여되어 있으며, 반복적인 종교적 도상을 넘어서는 생동감이 느껴진다. 이러한 점에서 보로보두르 부조는 단순히 장식적 요소가 아니라, 불교 신앙·교리·역사적 현실을 아우르는 종합적 기록물로 평가된다. 유네스코는 이를 세계 불교 미술의 정수이자, 8세기 자바 문명의 문화적 성취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인정하고 있다.